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문단 편집) ===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3월의 이데스]][* Idus Martiae. 3월 15일로 카이사르가 암살된 날.] === 카이사르 암살은 너무나도 낙관적인 장래 예측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즉 애시당초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결행된 일이 아니었다. 브루투스가 딱히 뭔가 하려고 한 게 아니었고 매제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주동이 된 일에 찬동했을 뿐이라고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주장하면서 그를 비난하는 근거로 사용하는데, 사실 [[행복회로|카이사르만 죽이면 사람들이 독재자의 죽음에 환호하여 공화정이 자연스레 돌아올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건 모든 암살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리고 카시우스도 이런 면에선 별반 브루투스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브루투스를 포함한 암살자 무리가 당시 정세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제대로 된 후속조치를 준비하지 않았던 것, 카이사르의 심복 측근과 후계자들, 그리고 정치상황을 경시[* 역사적으로 카이사르는 [[로마 제국|로마 제정]]의 원조이자 [[황제]]의 어원으로써 로마 공화국을 실질적으로 끝장낸 독재자의 인식이 있지만 당시 카이사르는 민중파의 거두로 민중의 뜻을 대변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로마 평민들은 대부분 카이사르를 크게 지지했고 원로원파는 오히려 불법적인 부정축재와 민중의 뜻에 어긋나는 국정전횡을 자행하여 공화국 말기의 난맥상을 만든 끝에 카이사르에게 [[개발살]]난 것이라 공화정을 지킨다는 말의 정당성은 매우 떨어져 있었다.]했다는 점은 분명하며 이러한 사실들로 미뤄볼 때, 그들에게 정치적 능력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한편 모친인 세르빌리아도 비록 아들과 연을 끊지는 않았지만 카이사르측 인사들에게 암살위협을 받는 아들을 자기 집에 들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세르빌리아가 살던 집은 카이사르가 선물한 집이었다. 그리고 카이사르 암살 전부터 모자 관계는 상당히 서먹했다. 본래 브루투스는 클라우디아 풀크라와 결혼했었는데 기원전 45년에 정확한 이유를 들지 않고 이혼한 후 카토의 딸인 포르키아와 재혼했는데, 이 결혼에 대해 세르빌리아가 분노하여 사이가 틀어졌다. [[키케로]]에 따르면, 이 이혼은 포르키아와 결혼하고 싶다는 것 외엔 타당한 사유를 들지 못해 반 추문이 되기도 했다.] 카이사르 암살 후, 브루투스는 그들의 정당성에 대해 연설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냉랭했고,[* 공화정을 지키기 위했다는 명분이었지만 다수 시민들에게는 기득권을 지킨답시고 [[그라쿠스 형제|이전의]] [[원로원 최종권고|사례]]와 동일하게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민중파를 죽인것으로밖에 안보였다.] 더 나아가 분노한 사람들과 군인들을 피해다니게 되며 간신히 [[마케도니아]] [[총독]] 자격으로 부임하는 식으로 로마에서 도망쳤다. 이후에는 [[안토니우스]]를 견제하기 위해 옥타비아누스를 지원하는 [[키케로]]에게 강력하게 반발했고, 그런 조치는 자승자박에 불과하며 결국 그건 안토니우스 대신 옥타비아누스를 군주로 섬기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실질적으로 암살자들에게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였다. 당장 그 카이사르의 후계자였던 데다가(그런 그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자신들을 용서할 리가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았을 것이다.) 옥타비아누스의 정치적 능력은 안토니우스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으로 적에게 정치적 프레임을 뒤집어 씌우는데 매우 능숙한 인물이었다. 키케로 역시 그에게 속아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이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다만 당시에는 키케로가 생각했던 것처럼 [[원로원]]파 중에는 안토니우스를 더 위험시하는 여론이 더 컸다. 일단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를 따라다니면서 군공을 세운 입지가 있는 카이사르의 측근이자 카이사르파의 유력한 인물이라 카이사르 파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도 높았고 자체적으로 군대도 갖고 있었다. 반면 옥타비아누스는 실제로는 카이사르의 아들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정치 경험도 없었던 10대 후반의 청소년에 불과했기 때문. 문제는 키케로가 안토니우스를 잡는답시고 옥타비아누스에게 멋대로 권력을 쥐어주고 있었으며 옥타비아누스의 정치적 역량이 키케로의 상상을 초월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당시 로마군은 카이사르의 [[사병]]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이들을 움직이려면 옥타비아누스를 내세워야 했던 건 맞지만 키케로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옥타비아누스를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당연히 안토니우스든 옥타비아누스든 위험인물이라고 생각했을 브루투스 입장에서는 키케로가 한 짓은 기도 안 찼을 것이다.][* 다만 어차피 그 상황에서 선택지 자체가 별로 없었다. 키케로 입장에서는 안토니우스와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군대를 움직이려면 카이사르의 아들 옥타비아누스에게 기대거나 아니면 로마를 ~~빤스런~~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사실 실제로 키케로는 한동안 안토니우스를 피해 그리스로 도망을 친 적이 있다.) 키케로의 진짜 문제는 상황을 너무 낙관해서 옥타비아누스를 제어할 장치를 전혀 마련해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애시당초 키케로가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별로 없었긴 하지만 적어도 키케로는 당시 로마에서 공화정을 수호한다는 점을 들어 옥타비아누스를 좀 더 옥죄는 것도 가능했는데 자신의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영향력을 너무 과도하게 평가해 버렸다.][* 예를 들면 옥타비아누스 근처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두고 감시하거나 여차하면 암살을 기도한다거나 혹은 옥타비아누스가 거느리고 있던 로마 군대에게 원로원의 이름으로 높은 봉급을 약속하고 옥타비아누스와 이간질을 하는 등.] 여기서 암살 직후의 상황에 대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기록된 내용을 조금 기술하면, >암살이 감행된 후, 브루투스와 암살자들은 "우리는 독재자를 처단했고, 자유를 수호했다"라고 외치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시민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자 브루투스는 시민들을 모아 연설을 했다. > >"[[독재자|카이사르가 살면]] [[독재|로마시민들은 노예가 될 것이고]], 그가 죽으면 자유로워질 것이오! 카이사르의 용맹함과 위대함은 나도 물론 찬미하던 것이었지만, '''그는 [[왕]]이 되려고 했소.''' 그래서 나는 눈물을 감수하고 날 아들처럼 보살펴 준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소!" > >그의 연설에 대중이 조금 안정을 찾으려 하자 갑자기 상복을 입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안토니우스]]가 나타나 외쳤다. > >"나는 카이사르의 장례를 치르러 왔지 그를 찬양할 생각은 없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는 로마의 노동력을 높이는데 큰 공헌을 했고, 수많은 돈을 국고에 기부했고, 사익을 위해 단돈 한푼조차 쓴 바 없으며, 가난한 이들의 편이 되어주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왕이 될 생각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 >안토니우스가 말을 마치자 시민들은 그 말이 옳다며 외쳤다. 그러자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유서]]를 들어보이며[* 암살이 감행되고 집을 수색하던 안토니우스가 거실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저는 도저히 이 유서를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이걸 읽으면 여러분은 모두 그의 시신에 달려들어 발에 입을 맞추려 할 테니까요." 라고 말하며 시민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유언을 알려달라며 소리쳤다. 안토니우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시민들을 카이사르의 시신 주위로 둥글게 앉혔다. > >"이곳은 카시우스에게 찔렸고, 카이사르가 사랑한 브루투스에게 찔렸습니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배은망덕|그 카이사르를 브루투스가 찔렀습니다.]] 카이사르조차 브루투스를 보고는 얼굴을 가리고 쓰러졌으며, 그 순간, 저도 로마 시민 여러분도 모두 쓰러진 것입니다!" > >안토니우스가 피투성이가 된 카이사르의 옷을 들어보이자 분노한 시민들은 살인자들을 잡으라며 소리를 질렀고 안토니우스는 그 때를 놓치지 않았다. > >"유서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로마 시민 전체에게 74드라크마 씩의 돈을 나누어 주라고 했으며, 자신의 별장, 과수원, 사유지를 전부 시민들의 처소로 바쳤습니다. 이런 로마의 영웅이 죽음을 맞았단 말입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